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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페인

스페인-모로코 여행 일정 #1

by Nagnes 2022.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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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

 

2019년 5월 22일, 마드리드를 시작으로 약 3주간 스페인 여행을 했다. 

 

스페인 여행 일정은 카스티야 >> 카탈루냐 >> 안달루시아 지역을 구경하고, 스페인 여행이 끝나면 알헤시라스에서 배를 타고 모로코로 들어가는 일정이었다. 모로코에서는 탕헤르 >> 쉐프샤우엔 >> 페즈 >> 카사블랑카 >> 마라케시를 여행하기로 했다. 출발 전 여러 날을 걱정하고, 망설였던 여행 일정이었다. 비행기를 타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우리 부부의 첫 해외여행이지만 우리는 할 수 있을 거야'

 

  • 교통편

마드리드 >> 바르셀로나 이동은 고속열차,

바르셀로나 >> 그라나다 이동은 항공편,

안달루시아 지역에서는 렌터카를 이용했다. 운전시간이 많아서 조금 힘들었지만 자유롭게 안달루시아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기에는 대중교통보다 렌터카가 편리했다. 그리고 안달루시아 여행 후기에도 패키지여행이 아니라면 렌터카를 이용하라는 조언이 많았다. 그라나다에서 렌트를 하고 세비아에서 반납을 했다.

 

세비아 >> 알헤시라스까지는 고속버스를 이용했고, 모로코에서도 렌터카를 이용해서 이동했다. 탕헤르 국제공항에서 차량을 넘겨받고, 카사블랑카 국제공항에서 반납을 했다.

 

가장 불편했던 교통수단은 바르셀로나에서 그라나다로 가는 부엘링 항공이었는데, 셀프 체크인을 하면서 수하물 중량이 오버되어서 몇 번이나 짐을 정리했던 기억이 있다. 셀프 체크인을 해본 적이 없어서 조금 당황했던 순간이었다.

 

 

톨레도_알카사르 인근

 

● 카스티야(Castilla)

 

마드리드

세고비아

톨레도

 

스페인 중부의 역사적인 지역명이며, 지방행정구역으로서의 '카스티야'는 존재하지 않는다. 카스티야이레온, 카스티야라만차 2곳의 자치 지방에 '카스티야'의 명칭이 사용되고 있다. 지명의 유래에는 '성(castillo)의 지방'이라는 뜻이 담겨있고, 중세 카스티야 왕국에 속하는 지역의 중심부를 가리킨다. 

 

지역의 문화적, 사회적 상징은 돈키호테이다. '빈티가 나고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긍지와 자존심 하나만은 이베리아 반도 제일'인 기사도 인생관이 강한 지방이다. 한마디로 에스파냐의 자존심과 고집만 센 꼴통들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안달루시아보다 엄숙하고 차분하면서 카탈루냐보다 더 푸근하다. 사회적 분위기가 안달루시아와 카탈루냐의 중간쯤 되며, 이상주의적, 신비주의적 마인드가 강한 곳이라고 한다. 

 

우리는 마드리드에서 버스를 이용해서 세고비아, 톨레도를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마드리드에 있는 미술관, 왕궁, 성당, 광장 등을 구경했는데 모두 숙소에서 가까운 편이라서 걸어 다녔다.

 

 

카탈루냐 음악당

 

● 카탈루냐(Catalunya)

 

바르셀로나

피게레스

카다케스

몬세라트

시체스

 

13세기~14세기의 카탈루냐 지방은 아라곤 해양 제국의 중심지로서 번영을 누렸다. 근세에 들어서 벼락 출세한 마드리드와 달리 바르셀로나의 부와 명성은 이렇게 중세부터 쌓아 놓은 뿌리 깊은 유럽의 부자 동네 중 하나이며, 이러한 과거의 번영은 지금까지도 카탈루냐 인들의 민족적 자존심의 큰 일부이다. 예를 들면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루냐어를 사용하면 그만큼 더 현지인들의 호감과 우대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현재까지 5차례 차지 독립을 선언한 지역이다. 2017년 이후 관련 정치인 일부가 망명을 하면서 잠잠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독립을 요구하는 깃발을 걸어둔 집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지로나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있는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도시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가우디의 건축물을 구경하러 오는 관광객들이 넘쳐나는 곳이며, 전 세계의 건축학도들의 성지이기도 하다.

 

이러한 가우디의 성공이 있게 된 배경에는 카탈루냐 지방이 오랜 상업적 전통에 기반해 실리에 밝고 세련된 소비문화가 발달한 곳이기 때문이다. 가우디가 건축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재정적 지원과 수요가 동시에 존재했기 때문에 그는 바르셀로나에 역사에 남을 건물들을 지을 수가 있었다.

 

바르셀로나는 카르타고의 장군 하밀카르 바르카가 점령한 도시였기 때문에 '바르카의 도시'라는 뜻으로 '바르셀로나'라고 불렸다. 

 

바르셀로나 시내에서는 전철과 버스, 택시,

달리 투어는 전용 소형 버스를 이용했고,

몬세라트 시체스는 기차를 이용했다.

 

바르셀로나를 떠나는 날 벙커(bunkers del carmel)에서 바르셀로나의 석양과 야경을 구경했다. 한국에서 온 대학생들을 만났고, 사진을 찍어서 보냈다. 그들은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반응이 시큰 둥 했다.

 

 

 

그라나다_알함브라 궁전

 

● 안달루시아(Andalucía)

 

그라나다

모트릴

네르하

프리질리아나

말라가

론다

자하라 데 라 시에라

세비아

코르도바

 

시끌벅적하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여과 없이 표현하는 전형적인 스페인 남부의 뜨거운 가슴을 보여주는 곳이다.

 

특히 고대 로마시대부터 도시가 형성된 코르도바는 711년 이슬람에 점령당하면서 무어인들이 최고의 문화 업적을 이뤄낸 곳이다. 그들은 대학을 설립했고, 100만 권에 달하는 도서를 보유했던 도서관을 지었다. 그리고 의학과 약학, 철학, 수학을 가르쳤다. 그 당시에 전 세계의 도시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많은 인구와 크고 화려한 도시의 영화를 누린 곳이라고 했다. 메스키타와 로마시대의 다리를 볼 수 있는 중세시대 도시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외 코르도바, 세비야를 비롯한 수많은 곳에 무어인들이 영향을 미친 웅장한 건축물이 여전히 남아 있다. 세비아에는 콜럼버스의 함대가 출전한 항구가 남아 있다. 현재 아메리카의 스페인어는 안달루시아의 방언에 기초하는데 이곳 사람들이 아메리카의 스페인어를 전파했기 때문이다.

 

렌트가를 타고,

'유럽의 발코니(Balcón de Europa)' 네르하,

'Costa del Sol(태양의 해변)' 말라가,

'누에보 다리(Puente Nuevo)' 론다,

'안달루시아의 중심 도시' 세비야까지 이동했다.

 

말라가는 20세기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인 파블로 피카소가 출생한 곳이다.

 

그라나다, 말라가, 론다, 세비아에서 숙박을 했다. 중간에 '유럽의 발코니'로 불리는 네르하에서 들러 한나절을 보냈다. 지중해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되고, 기분이 좋아졌다. 개인적으로는 6월 초 '론다의 아침' 풍경이 쉽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해발 700m 이상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아침 기온이 상쾌했고 눈부신 햇살과 아침 바람에 들려오는 숲과 자연의 소리가 귓속을 간지럽히는 곳이다. 아침 산책길에 아주 익숙한 어릴 적 초가을 고향 풍경도 생각이 났고, 아주 오래된 건물들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아득히 먼 곳에서부터 시작된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곳은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다고 한다. 

 

스페인_안달루시아_론다

 


 

1713년 이후 영국령이 된 지브롤터, ‘헤라클레스의 기둥’

 

알헤시라스(영국령 지브롤터 옆)

 

스페인을 떠난다는 것은 유럽과의 작별이었다. 스페인과 모로코는 지중해를 두고 마주 보고 있다. 30분이면 갈 수 있는 짧은 거리이지만 역사적으로 누적된 거리감은 이보다 훨씬 멀다. 영토 문제로 아직도 서로 다투는 부분이 있지만 서민들에게는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리는 듯했다. '삶 속에서는 언제나 밥과 사랑이 원한과 치욕보다 먼저'이니... 스페인 사람이든 모로코 사람이든 모두 우리에게 온순하고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여행, In search of lost me 

 

스페인-모로코 여행 일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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