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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페인

마드리드(Madrid) #2_마드리드 왕궁(Palacios Real de Madrid)

by Nagnes 2022. 8. 9.

● Palacios Real de Madrid


(마드리드 왕궁)은 스페인 왕실 공식 관저.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마드리드 왕궁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15~30분 정도 줄을 서는 일이나 안으로 들어가서 가방 검사를 받는 과정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특히 이곳에서 카메라 가방에서 맥가이버 칼이 나오는 바람에 경비원과 두 눈을 부릅뜨고 밀치며 서로 소리를 지르는 마찰이 있었다. 칼은 맡기고 다시 받기로 했지만 흥분해서 발정 난 돼지처럼 달려드는 경비원은 용서가 되지 않아서 한동안 째려봤다.ㅎ 

 

 

스페인 건축물의 절정,

고전주의 바로크 건축 양식.

 

펠리페 2세(루이 14세 손자)가 이탈리아 건축가 유바라에게 베르사유 궁전처럼 지으라고 지시했지만 유바라는 착공 전에 사망하고 그의 제자 사케티가 프란시스토 사바티니, 벤투라 로드리케스 등과 함께 완공했다고 한다.

 

2800개의 방,

135,000㎡의 면적,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궁전.

 

마드리드 왕궁은 공식 행사가 있을 때만 사용하며, 그 외에는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을 모방한 '왕관의 방', 로코코 양식의 드레스룸 '가스파리니 방', 벽 전체가 황금 비단으로 꾸며진 '황금의 방', 144명이 식사를 할 수 있는 유렵 최대의 '연회장' 등이 화려한 왕궁 생활을 엿보게 한다. 고야, 보슈, 벨라스케스 등 거장들의 회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금은 세공품, 샹들리에 등 볼거리들이 많은 곳이다.

 

마드리드 왕궁은

9C 경 성벽의 일부로

11C 무어인들의 톨레도 왕국 소유로,

14C 알폰소 11세가 스페인 국회를 마드리드 왕궁에 소집, 이후 펠리페 2세는 궁정을 마드리드 왕궁으로 옮김.

16C 지어진 구 성곽이 불타면서

18C 펠리페 5세가 새로운 궁전을 짓도록 함. 카를로스 3세가 최초로 새 궁전에 머물게 됨

 

벨라스케스, 디폴로, 고야 등 스페인 최고의 화가들이 궁전의 보수 작업에 참여했다고 함.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대부분의 주요 공간과 작품들은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해서 아쉬웠다. 못 들은 척하면서 찍은 일부 사진들이 있어서 조금은 위로가 되었지만 오래된 그릇들이나 찍으려고 간 것은 아닌데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지 않는 범위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전 남쪽에는 성당, 북쪽에는 사바티니 정원, 서쪽에는 카포 델 모로 정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줄을 세우면 앞뒤 사람 간격이 거의 없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있다. 왜 그러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조금 여유 있게 줄을 서는 문화는 보고 배워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 알데무나 성모 대성당(Catedral Nuestra Senora de la Almudena)

 

'성당의 성벽(아랍어 Almudaina)'에서 이름이 유래한 알무데나 성당은 711년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했을 때 마드리드 주민들이 성당 벽에 성모상을 숨긴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로부터 약 270년 후 알폰소 6세가 마드리드를 점령했을 때 이 성모상을 발견하면서 성당을 짓기 시작했는데, 약 100년 만에 완공이 되었다고 한다.

 

아르메리아 광장(Plaza de Armeria)을 사이에 두고 마드리드 왕궁과 마주 보고 있다. 왕궁에서 보이는 면은 출입구가 아니라 북쪽 파사드이다. 출입구는 동쪽에 있다.

 

 

● '캄포 델 모로(Campo del Moro)'

 

궁전 아래의 서쪽 편에는 정원이 있다. 스페인어로는 '캄포 델 모로(Campo del Moro)'라고 하는데 '모로인의 들판', '무어인의 들판'이라는 뜻을 가진 왕궁의 후원이다. 당시(1109년 무렵) 이슬람 군주(알리 벤 유수프)가 마드리드를 정복하기 위해 이곳에 진을 쳤다는 얘기와 기독교 세력으로부터 다시 마드리드를 탈환하고자 일부러 붙인 이름이라는 얘기가 전해온다. 

 

카를로스 3세

 

카를로스 3세

 

메인 계단 천정의 로코코 양식의 프레스토화는 18C 이탈리아 출신의 화가 '코라도 지아갱토(Corrdo Giaquinto)'의 작품이다.

 

現 왕실 일가의 사진

 

 

카를로스 5세

 

카를로스 3세의 방(Salon of Charles Ⅲ)

 

카를로스 3세(가운데)

 

 

갈라 다이닝 룸(Comedor de Gala)

 

● 갈라 다이닝 룸(Comedor de Gala)

 

144명이 식사를 할 수 있는 유렵 최대의 '연회장'은 무도회와 갈라 만찬을 위한 큰 홀이다. 오늘날 국빈 만찬을 위한 홀이라고 한다.

 

 

 

 

 

카를로스 2세

 

 

마드리드 왕궁의 중정

 

 

마드리드 왕궁을 구경하고 나오면 아쉬운 마음이 더 많이 든다. 많은 것을 본 것 같지만 실상 이 왕궁이 가진 것에 비하면 얼마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멀리 알무데나 성당이 모던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서있다. 왕궁과 비슷한 건축양식처럼 보이게 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새 옷을 입고 왕궁 옆에 서 있는 듯이 보였다. 우리는 알무데나 성당에는 들어가지 않았았다. 마드리드 왕궁 구경으로 이미 지쳐있었고, 아직 걸어가야 할 일정도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성당 앞에서 잠시 쉬었다가 마드리드 왕궁 북쪽에 있는 사바티니 정원(Jardines de Sabatini)으로 향했다.

 

마드리드는 에스파냐의 발상지, 10C 카스티야 왕국이 있었던 곳으로 오래전부터 정치적 역할이 큰 도시이자 스페인의 수도이다. 그리고 레콩키스타(국토회복운동_무슬림을 몰아낸 종교전쟁)의 주도적 역할을 했던 곳이다. ​

 

이 지역은 돈키호테가 상징하듯 긍지와 자존심의 기사도적 인생관이 강한 지방이라고 한다.

 

스페인 여행을 하다 보니 우리와 다른 역사를 알게 되고 외우게 되고, 이해하려고 하게 되었었다. 그래서 마드리드 왕궁에서도 볼거리들을 찾아서 이름, 명칭을 외우게 되었는데 쉽지 않았다. 굳이 기억해야 할 이유도 없었지만 금방 잊혔다. 그렇게 노력하는 것보다는 방문지의 시대적 상황을 조금만 알고 가면 많은 부분들이 쉽게 이해되기도 한다. 즐기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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