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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페인

지중해(地中海, Mediterranean Sea)의 빛

by Nagnes 2022. 9. 7.

 

 

그리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빛이었다. 마치 태초의 빛처럼, 빛 외에는 아직 아무것도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그곳은 빛으로 흥건한 땅이었다. 강렬하고 순수한 빛이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종일 쏟아져 내렸다. 숨을 곳이라고는 없었다. 빛은 육체를 관통해 영혼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리스의 빛은 레몬을 샛노랗게 익히고, 부겐빌레아를 새빨갛게 피워내고, 올리브 열매를 검푸른 초록으로 만들어냈다. 이런 빛잔치가 날마다 벌어지는데 우울할 틈이 있을까 싶었다. 이 빛 아래서는 절망조차 사치가 될 것 같았다. 모든 존재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빛, 모든 사물을 꿰뚫을 듯 쏟아지는 빛은 거침없고 순수한 조르바와 닮아 있었다. 반면, 대지를 불태울 듯이 타오르는 빛의 세례는 사람을 광기로 몰아가기도 쉬울 것 같았다. 어둠만이 사람을 광기로 이끄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그리스에서 하게 되었다. - 도보 여행가 김남희의 앉아서 하는 여행, 몸으로 읽는 책 (6) 서른넷에 회사를 관두고 세계일주로 이끈 건 ‘조르바’였다 2017.06.15 <경향신문>

 

 

유럽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지중해를 만나는 일이다. 스페인에 처음 맞이한 지중해의 빛은 말로 형언조차 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어떻게 글로 표현해야 될지 몰라서 '쏟아지는', '부서지는', '신의 축복 같은', '눈부신', '화사한'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에 머물렀다. 그러다가 신문에서 지중해의 빛을 표현한 마음에 드는 글을 만났다.

 

이 글을 쓴 도보여행가 김남희 씨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카잔차키스를 만나러 크레타섬으로 갔지만 나는 크레타섬 출신의 화가 엘 그레코를 만나러 스페인으로 왔다. 두 사람이 똑같은 지중해의 빛을 보면서 같은 느낌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표현은 크게 달랐다. 작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나는 가슴으로 느껴지는 감정들을 글로써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답답해했다. 그럴 능력도 없으면서 마음은 시건방을 떤 셈이다. 그런 나 자신이 싫기도 했다. 어찌 되었던 답답했던 마음을 뻥 뚫리게 해주는 글을 만나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강렬하고 순수한 빛잔치가 날마다 벌어지는 그곳은 빛으로 흥건한 땅이었다.

 

 

그라나다에서 네르하로 가는 길에는 모트릴 해변이 있다. 우리는 바닷가에 서 있는 젊은 남녀를 보았다. 그들은 조금의 거리를 두고 나란히 서서 지중해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들 주위에는 눈앞의 거센 파도마저 잠재울 것 같은 무거운 침묵이 있었다. 그들은 왜 이곳으로 왔을까?

 

지금 사진을 보면서 그들을 다시 생각한다. 어쩌면 그때 그들에게는 영혼까지 스며드는 강력하고 순수한 지중해의 빛이 필요했었는지도 모른다. 절망하지 않기 위해서, 현실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다시 자유롭게 사랑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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